
고구려의 왕릉과 장례 문화는 구조·벽화·부장품을 통해 내세관과 권력 상징체계를 드러내며, 국가적 위계의 표현 방식으로 기능했다.
고구려 장례 문화는 왜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행위’였을까
고구려의 무덤은 단순한 매장 공간이 아니라 사후 세계를 위한 ‘또 하나의 집’이자 ‘우주의 축소판’으로 설계되었다. 고구려인은 죽음을 삶의 연속으로 이해했고, 무덤 구조·벽화·부장품을 통해 내세의 삶을 준비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고구려 고분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사신도(청룡·백호·주작·현무), 천문도, 사냥·연회 장면 벽화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서론에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핵심은 고구려 장례 문화가 왕권과 사회 구조까지 시각적으로 담아낸 ‘정치적·종교적 상징 장치’였다는 점이다. 왕릉과 귀족 무덤은 생전에 가진 권위·지위·부를 그대로 내세에 이어가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으며, 이는 무덤의 크기·구조·장식·부장품에서 매우 분명하게 나타난다.
왕릉 구조·벽화·부장품으로 본 고구려의 장례 체계
고구려의 무덤은 크게 돌무지무덤(적석총), 봉토분, 석실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에는 피라미드형 적석총이 주로 사용되었고, 중 후기에는 석실분·벽화분으로 발전했다. 특히 평양·집안 일대의 왕릉급 고분은 내부에 여러 개의 석실과 통로를 두고, 천장에 별자리·운문·사신도를 배치해 내세 세계를 상징적으로 구성했다. 벽화는 무덤 주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핵심 요소였다. 왕릉 벽화에는 사신도·천문·행렬·연회·수렵 장면이 등장하며,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내세에도 지상과 동일한 질서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의례적 시각화’였다. 부장품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구려인은 무기·갑옷·말갖춤·도자기·식기·장신구를 함께 넣어 내세에서의 삶을 준비했다. 이는 생전 신분 유지와 번영을 기원하는 실용적·상징적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 특히 말과 관련된 부장품이 많은 것은 고구려의 기마 중심 생활·군사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구려의 왕릉 배치는 지맥(산의 흐름)·방위·대지 형태를 고려해 선정되었고, 이는 자연을 신성하게 보는 고구려의 종교관과 연결된다.
고구려 장례 문화는 내세 신앙·왕권 상징·우주관이 결합한 복합적 구조였다
고구려의 왕릉과 장례 문화를 관통하는 핵심은 ‘내세 또한 하나의 국가’라는 사고방식이다. 무덤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왕권 상징과 우주 질서를 재현하는 구조물이며, 벽화와 부장품은 죽은 자가 내세에서도 권위와 보호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였다. 고구려의 장례 문화는 종교·정치·사회 구조가 통합된 복합체였고, 오늘날 남아 있는 고분과 벽화는 고구려인의 정신세계를 복원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