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수왕의 평양 천도는 단순한 수도 이동이 아니라, 동북아 정세 변화와 고구려의 장기 전략을 반영한 국가적 대전환이었다. 이 결정은 남진 정책과 백제·신라 관계 재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왜 장수왕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려 했는가
장수왕의 평양 천도는 고구려 정치사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 중 하나이다. 수도 이전이라는 행위는 고대 국가에서 쓰기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장수왕은 기존 국내성 체계를 떠나 과감하게 평양으로 중심을 옮겼다. 이 결정 배경에는 단순한 왕권 강화 의지뿐 아니라, 국제 정세의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북방에서는 유연한 유목 세력이 성장하고 있었고, 서쪽에서는 북위가 중원 북부를 통일하면서 압박이 강화되었다. 남쪽에서는 백제가 한강 유역을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고구려의 남방 방어선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평양은 지리적·군사적·경제적 장점이 동시에 존재하는 전략적 공간이었다. 대동강 유역은 농업 생산력이 높았고, 서해 해상로를 통해 중국·한반도·일본열도를 잇는 교역망을 형성하기 유리했다. 서론에서 강조해야 할 핵심은, 평양 천도가 고구려의 생존 전략이자 새로운 국력 확장의 기반을 구축하는 ‘국가 재설계 프로젝트’였다는 점이다.
평양 천도 이후 전개된 남진 정책과 백제·신라 구도의 재편
장수왕이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고구려는 즉각적으로 남진 정책을 강화했다. 이는 평양의 지리적 이점을 적극 활용한 전략이었다. 평양은 한강 유역을 직접 압박할 수 있는 기지였고, 백제의 북상·해상 장악을 견제하기에 최적의 위치였다. 장수왕은 이러한 기반을 토대로 백제에 대한 공격을 지속했고, 마침내 475년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는 삼국 관계 전체를 뒤흔든 결정적 사건이었다. 한성 함락으로 백제는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기며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한강 유역은 고구려가 장악했다. 이 지역은 단순한 영토 가치가 아니라 경제·군사·외교적 핵심 요충지였기 때문에 고구려는 이때부터 남부 전략을 보다 적극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또한 장수왕은 신라와의 관계도 정교하게 조정했다. 신라가 백제·왜의 공격을 받던 시기에 고구려는 군사적 위협과 압박을 병행해 신라의 외교적 선택지를 제한했다. 평양 천도 이후의 고구려는 남부 삼국의 구도에 깊숙이 개입하며, 고구려 중심의 세력 판도를 구축하려 했다. 그 결과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시기 북방 중심의 패권에서, 장수왕 시기에는 남북을 모두 포괄하는 ‘이중 축 패권’을 완성하게 되었다. 즉, 평양 천도는 고구려의 군사 작전 범위를 남쪽으로 확장시키는 결정적 계기였다.
평양 천도는 고구려의 확장 전략과 국가 구조를 재정의한 전환점이었다
장수왕의 평양 천도는 단순한 행정 이동이 아니라, 고구려의 정체성과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꾼 사건이었다. 농업·경제 기반은 강화되었고, 해상·육상 교역망이 확장되었으며, 남하 정책은 본격적으로 실행되었다. 백제의 한성 함락과 남방 질서 재편은 이러한 전략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물론 평양 중심 전략은 이후 고구려가 남쪽 분쟁에 더 깊이 얽히는 부담으로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이 결정은 고구려가 동북아시아 강국으로 자리 잡는 데 필수적이었다. 결국 장수왕의 천도와 남진 정책은 고구려가 단순한 방어 국가를 넘어 ‘공격적·전략적 강국’으로 재편되는 역사적 전환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