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라 미술의 중심지인 타크 실라(Taxila)와 페샤와르(Peshawar)는 불교 예술의 황금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지로, 고대 동서 문명의 교차로이자 불교 교리의 시각적 표현이 발전한 현장이었다. 두 지역에는 스투파와 사원, 공양소, 조각 패널, 승방 등이 밀집되어 있으며, 헬레니즘과 인도 미학이 융합된 간다라 예술의 정수를 담고 있다. 본 글에서는 타크 실라와 페샤와르의 역사적 배경, 주요 유적의 구조와 예술적 특징, 그리고 간다라 불교문화의 확산 과정에서 이들이 가진 역할을 살펴본다.
타크 실라의 역사적 의의와 문화적 배경
타크 실라는 오늘날 파키스탄 펀자브 주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간다라 문명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였다. 기원전 5세기경부터 이미 교역로의 요충지로 번성했으며,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 이후 헬레니즘 문화가 유입되면서 그리스풍의 도시 구조와 미술 양식을 받아들였다. 마우리아 왕조 아쇼카 대왕의 불교 후원 이후, 타크 실라는 불교 전파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도시 곳곳에 스투파와 사원이 세워졌고, 수도승과 상인, 장인, 순례자들이 모여드는 국제적 신앙 중심지로 발전했다. 특히 스투파 건축군인 다르마라즈카(Dharmarajika)와 주울리 안(Jaulian) 사원은 간다라 예술의 대표적 유적지로 꼽힌다. 다르마라즈카 스투파는 거대한 반구형 돔과 석조 장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처의 생애를 서사적으로 새긴 부조들이 기단을 둘러싸고 있다. 주울리 안 사원은 승방과 명상실, 공양소가 한 단지에 배치된 복합 구조로, 당시 승단 생활의 구체적인 모습을 전한다. 또한 타크 실라에서는 금·은·청동으로 만든 불상과 보살상, 장신구, 회화 조각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간다라 예술의 기술적 수준과 미학적 세련됨을 입증하고 있다. 이처럼 타크 실라는 단순한 종교 도시가 아니라, 동서 문화가 교차하며 새로운 예술 언어가 탄생한 역사적 실험장이었다.
페샤와르의 불교 유적과 간다라 예술의 중심지
페샤와르는 쿠샨 왕조 시기에 수도로 번영하며 간다라 예술의 생산과 전파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다. 이 지역은 스와트 계곡과 아프가니스탄 동부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 교역과 신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샤지키데리(Shah-ji-ki-Dheri)와 자말가리(Jamal Garhi), 타카람(Takht-i-Bahi) 사원이 있다. 샤지키데리에서는 카니슈카 대왕의 거대한 스투파와 황금 사리함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쿠샨 왕조의 불교 후원을 상징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사리함에는 헬레니즘적 인체 조각과 불교 도상이 함께 새겨져, 동서 미학의 융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말가리 사원은 정교한 부조와 입체적 인체 묘사로 유명하며, 수행자와 공양자의 표정에서 간다라 예술 특유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타카람 사원은 산악 지형을 따라 계단식으로 조성된 건축물로, 각 단에 스투파와 불상이 배치되어 수행의 단계적 상승을 상징한다. 페샤와르는 또한 당시 간다라 예술품의 제작과 유통을 담당한 주요 공방 지대였으며, 그 유물은 오늘날 영국 대영박물관과 라호르 박물관 등지에 소장되어 있다. 이처럼 페샤와르는 간다라 미술의 창작과 확산의 중심지로서, 불교 신앙의 시각적 언어를 세계로 전파한 문명적 허브였다.
타크 실라와 페샤와르가 남긴 간다라 미술의 유산
타크 실라와 페샤와르는 간다라 예술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완성된 ‘삼위일체의 공간’이었다. 타크 실라는 학문과 교류의 도시로서 불교 사상의 기반을 제공했고, 페샤와르는 제국의 수도로서 예술 생산과 후원의 중심이 되었다. 두 지역의 유적은 간다라 미술의 조형적 특성과 사상적 깊이를 동시에 보여주며, 불교가 지역적 신앙을 넘어 세계 종교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해 준다. 또한 이곳의 유물들은 단순한 종교 조각을 넘어, 당시 인류 문명 간 교류의 증거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타크 실라의 정교한 부조와 페샤와르의 웅장한 스투파는 간다라 양식이 기술과 신앙, 문화가 만나는 교차점이었음을 증명한다. 오늘날 이 유적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간다라 예술이 남긴 창조적 융합의 정신을 후대에 전하고 있다. 불교미술의 세계화를 이끈 두 도시는 과거의 신앙 중심지를 넘어, 현재에도 인류 문화유산으로서 빛나는 예술적 전당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