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위치한 보로부두르(Borobudur) 사원은 불교의 세계관을 거대한 석조 구조로 형상화한 걸작이다. 8세기 샤일렌드라 왕조 시기에 건립된 이 사원은 불교의 삼계와 수행 단계를 건축으로 구현한 거대한 만다라 형태의 사원으로, 불교 건축미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본 글에서는 보로부두르 사원의 구조, 상징, 미학적 의미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샤일렌드라 왕조와 보로부두르의 건립 배경
보로부두르 사원은 인도 대승불교의 영향을 받은 자바의 샤일렌드라 왕조(8~9세기)에 의해 세워졌다. 이 시기는 해상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 교류가 활발하던 시기로, 인도 불교의 교리와 예술이 자바에 깊이 전파되었다. 왕조는 불교를 국교로 삼고, 부처의 깨달음과 우주 질서를 상징하는 사원을 건립함으로써 신앙과 권위를 동시에 표현하고자 했다. 보로부두르는 화산석을 이용해 약 200만 개의 석재를 쌓아 만든 거대한 피라미드형 구조물로, 높이 약 35미터, 너비 약 120미터에 달한다. 사원은 정사각형 기단 위에 아홉 개의 테라스가 층층이 쌓여 있으며, 하부는 욕계(欲界), 중간층은 색계(色界), 상부는 무색계(無色界)를 상징한다. 즉, 사원의 전체 구조가 곧 불교의 우주론과 수행 과정을 상징하는 하나의 거대한 만다라(曼荼羅)이다. 보로부두르는 단순한 신앙의 건축물이 아니라, 불교 철학을 돌로 시각화한 ‘우주적 사원’이었다.
보로부두르의 구조와 조형미
보로부두르 사원의 가장 큰 특징은 상징성과 체험성을 결합한 구조다. 신도는 사원의 아랫단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돌며 점차 위로 올라가게 되는데, 이 순례 동선 자체가 곧 수행의 과정이다. 하부 욕계에는 인간의 욕망과 업보를 주제로 한 부조가 새겨져 있으며, 각 장면은 불교의 윤회 사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중간의 색계에는 부처의 전생담인 자타카와 보살의 수행 장면이 조각되어, 인간이 깨달음으로 향하는 과정을 서사적으로 보여준다. 상부의 무색계로 올라가면 더 이상 부조가 존재하지 않고, 72개의 작은 탑(스투파) 안에 앉은 부처상이 나타난다. 이곳은 언어와 형상의 세계를 넘어선 ‘공(空)’의 영역을 상징한다. 사원의 최상단에는 거대한 중앙 스투파가 자리하여,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낸다. 이러한 구조는 불교 수행의 단계—계(戒), 정(定), 혜(慧)—를 건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신도는 사원을 돌며 자연스럽게 깨달음의 여정을 체험하게 된다. 부조의 세부 표현은 유려한 곡선과 섬세한 인체 묘사가 돋보이며, 인도 아마라바티 양식의 영향을 받아 생명력과 리듬감이 조화를 이룬다. 전체적으로 보로부두르는 ‘돌로 새긴 불교 경전’이라 불릴 만큼, 건축과 예술, 신앙이 완벽히 통합된 구조미를 자랑한다.
보로부두르의 불교미학과 문화사적 의의
보로부두르 사원은 불교의 우주관을 공간적으로 구현한 유일무이한 건축물이다. 그 구조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 신도 스스로가 수행의 길을 체험하도록 설계된 ‘체험적 건축’이다. 돌의 무게감 속에서 느껴지는 리듬과 조형미는 인간의 고통과 해탈, 무명과 깨달음의 여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보로부두르는 또한 불교가 인도에서 동남아시아로 전파되며 어떻게 토착문화와 융합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다. 인도적 상징성과 자바의 자연미, 그리고 해상 실크로드의 문화적 교류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오늘날 보로부두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인류가 남긴 정신적 유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 거대한 스투파와 부처상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묵묵히 깨달음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 보로부두르는 단순한 사원이 아니라, 불교의 철학과 인간의 예술혼이 하나로 결합된 ‘돌로 세운 우주’이며, 그 조형미는 지금도 세계인에게 깊은 경외와 영감을 준다.